왜 자꾸 마음이 요동칠까?





마음이 요동친다!
사적(私的)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말을
사용하다 보니
자꾸 '마음이 요동친다'고 하는데
요동치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각(覺)이다.



각(覺)이 요동친다는 것은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으로,
계산을 많이 한다는 소리이다.



그러면 왜 자꾸 요동치며
계산을 하느냐?
손해 보지 않으려 하고 쟁취하기 위해
 내 방법, 내 기준 대로
끌고 가려고 하는 욕심에서
비롯된다.



다시말해, 
모든 것이 나로 비롯되어 계산을 하기
 시작하니까 요동을 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상대를 위해서 티 없이
 무심으로 사랑할 때는 요동이 없다.



예를들어, 엄마가 
"우리 아기 배고프겠다"고 하며 젖먹이를
 품에 끌어안을 때, 이때는 요동이 없다.
왜? 바른(正) 생각으로
아기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수행하는 것은 마음을
 닦는 것이 아니라,
나의 동물적인 습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이것이 진정한 수행이다.



그래서
동물의 삶을 살지 않고 진정
 나의 삶을 살게 될 때는 요동치지 않기에
이런 생각, 저런 생각들이
많이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줄어들고 줄어들어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육신을 가지고 3차원에 사는 이상
절대 그렇게 될 수 없다.



우리는 70%를
상대를 위하며 살아야 하는데,
거꾸로 70%를 나를 위해 살고,
30%만 상대를 위해서 살기에
굉장히 어렵다.
그래서 요동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지상 3차원이 빚어진
원리가 3:7에 의해 빚어졌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 분별, 판단,
살아가는 방법 등 모든 것이
 3:7의 근본을 가지고 있다.



어려움이 오지 않을 때에는
이 생각이라는 것도 많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되는 대로 척척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어려움이 와 부딪쳤을 때는
마음에 아픔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것도 30%까지
어려울 때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
50%가 되어도 아직 표시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70%가 되면 정확하게
표시가 난다.



이때 내 기운을
바르게 쓰지 못해 탁해진 기운이
마음에 부딪쳐 아픔이 왔음을 알고
내가 탁해졌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이때부터는 1%만 더 와도 엄청난
아픔을 맛보게 된다.


그래서 이때부터 각을 많이 쓰며
분별을 하려고 든다.
어느 것이 바른 것인지 틀린 것인지를
정확하게 판단 하려면 여기에도
3:7의 법칙이 적용된다.



이미 70% 탁해진 에너지를
가지고 있기에 분별을 한다고 하더라도
70% 탁해진 쪽으로 기운다.
그래서 정확하게 틀린 쪽으로 간다.


그런데 바른 것을 분별하는
30% 에너지도 남아 있기에
바른 쪽으로 가려면 탁한 것에 맞서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은 바른(正) 분별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노력하면 30% 쪽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고 쉽게 가려하면
70% 쪽으로 간다.



그러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
"아, 참. 그때 그렇게 할 걸..." 하는
소리를 정확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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