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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재주를 부러워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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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재주를 부러워하여 "나도 저런 것을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은 질투가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들까? '앞으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기준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즉, '나는 기업 오너가 되겠다' '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하고 싶다'처럼 뭔가 하고 싶은 것이 정확하게 딱 서있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보면 이것이 하고 싶고, 저것을 보면 저것이 하고 싶고, 무엇이든지 보는 것마다 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삶의 진로를 선택하면 그런 생각이 더 이상 들지 않게 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진로를 선택하기 전에 먼저 기초 공부를  하는 것이다. 기초 공부란? '나는 누구이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공부하는 것이다. 나 자신도 모르고,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진로를  선택하다 보면 얼마 가지 않아  바뀌게 된다. 그러다 조건이 달라지면  또 바뀐다. 그래서 결국 시간 낭비를 엄청나게 하고, 젊음은 젊음대로  가버리게 된다. 기초 공부 없이는 목표를 뚜렷하게 세울 수 없고 목표가 없으면 자신의 진로를 정확하게 선택하기  어렵다. 그래서 기초 공부는 소질과 상관없이 누구나 해야 한다. 이처럼 기초 공부를 먼저하고  그 다음에 내 소질을 보아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과 저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을 더 잘 할 수 있는 지를 따져 보아야 한다. 그래서 '어느 것을 하겠다'는 것이 딱 서면 그다음부터는 이것저것에 손을 대지 않게 된다. 어디로 가려고 하는 내 기준이  확고하게 섰기에 그 길을 가기 위해  필요한 것 외에는 모두 부수적이라  '저것을 해보고 싶다' '저 사람이 부럽다'는 생각이  안  든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내가 이런 것들이 부족하구나' 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착착 알게 되어 그때부터 부족한 것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기초

왜 나이가 들수록 자꾸 어려움을 겪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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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살아가면서  분명히 진화 발전해야 한다. 내가 청년이되면 청년의 행동을 해야지 어린아이 같은 행동을 하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50세가 되면 어른이 되기에, 어른의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왜 나이가 들수록 자꾸 어려움을 겪을까?" 라고 생각이 든다면, 나이는 들어가는데 내가 하는 행위는 지적이지 못하고 질이 낮은데에 계속 머물고 있다고 보면 된다. 곧 나이가 들어가면서 뜻있게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청년 때에는 열심히 일만 하면 되지만, 어른이 되어서까지 계속 힘쓰는 일만 열심히 해서는 안 된다. 힘써는 일을 비교하자면 청년이 훨씬 더 잘한다. 그래도 나이가 들었으니 청년들에게 윗사람으로 대접받고 싶겠지만,  그러려면 하는 일의 수준을 높여야 한다. 윗사람은 질량 높은 일을 할때 윗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이만 먹었다고 윗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5,60대에 들었다면, 질량이 높은 일을 하지 못하면 시간이 갈수록 어려움이 가중 될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뜻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야 삶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청년 때처럼 그냥 또 뭔가를 이루려고만 하니까 사는 것이 힘들어지고 어려워지는 것이다. 뜻있고 보람 있게 살면 내게 필요한 것들이 정확하게 다 온다. . . . 💸 돈 많이 벌고 싶어요 -  https://byungmu.blogspot.com/2020/09/blog-post.html .. . 💬 인생의 모든 해답을 알려주는 멘토링   -  https://www.jungbub.com/lecture/#;  

50대 밑으로 가면 제사를 더 이상 지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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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 나라는 기술로  먹고살지 않는다. 기술로 먹고사는 사람은 극히  일부이다. 그 일부의 사람들도 지금과 같은 기술을 배우지 않는다. 그러면 무슨 기술을 배우느냐? 첨단 기술을 배운다. 요즘 아이들이 기술 말고  배우지 않는 것이 또 무엇이 있느냐? 유교 사상이 있다. 지금 아이들에게 유교 사상을 가르치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참, 이 나라가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하고 걱정을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앞으로는 우리 생활에 유교가 쓰이지 않기  때문에 지금 아이들에게 굳이 가르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정말 그렇게 되는지, 된다면 왜 그렇게 되는지 한 번  짚어 보자. 지금 5,60대 안팎의 사람 중에  유교를 배운 자가 얼마나 되느냐? 30%밖에 안 된다. 그러면 70대 윗세대인 부모님들은 유교를 얼마나 배웠느냐? 70%가 배웠다. 다시 말해, 우리 5,60대 안팎의  사람들은 부모세대에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던 유교보다는  물 밀듯 들어오는 서양의 문물을 접하고,  인류의 정보를 접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50대 아랫 세대는 어떻겠느냐? 제사 지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70대 윗 세대에서는 70%이상이 제사 지내는 법을 배웠지만 그 아랫세대 5,60대 안팎은 30%밖에  배우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은 전혀  배우지 않고 있다. 왜?  앞으로는 안 지낼 것이기에. 50대 밑으로 가면 제사를 더 이상 지내지 않는다. 지금 5,60대 안팎의 지식인들이 제사의 원리를 깨우쳐서 바르게 알고 그것을 후손들에게 전해주면  더 이상 유교적인 방식으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후손들이 조상을 모르고, 위아래를 모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정확하게 알게 되어, 무조건 조상이 위라고 생각하여 음식을 차려 놓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절하면서 조상에게 빌고 매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은 지금까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답습 해왔던 형식에서 벗어나 조상을 바르게 알고

뼈 빠지게 일하면 겨우 먹고 살 것만 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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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뭔가 정체되어 있고  할 짓이 없으면 어떻게 되느냐? 병과 놀고, 탁한 것과 놀게 된다. 그래서 고민도 생기고  남 걱정도 하게 되는 것이다.  할 일이 많은 사람은  아플 여지가 없다.  물론, 할 일도 할 일 나름이지만. 이때 할 일이란?  일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남에게 득 되는 지적인 일과  먹고 살려고 뼈 빠지게 하는 일. 먼저 뼈 빠지게 일하면 어떻게 되느냐?  아무리 벌어도 겨우 먹고 살 것만  벌게 된다. 만약 벌어서 모은 것이 있다면 홀랑  나가게 되어 있다. 즉,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가족 중 누군가 몸이 아프다든지, 자식이 사고를 친다든지 집안에 내가 개입  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자꾸 생겨 조금 모아 놓으면 거기에 다 쓸어  넣어야 한다. 이렇게 뼈 빠지게 일을 하면 먹고사는 것만 해결해 주지 조금 모아  놓은 것 같아도 결국 나갈 일이 생겨 절대 모아지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아주 재미있게 일을 해야 한다. 내 앞에 오는 사람들이 무엇이든 아주  재미있게 하고 즐겁게 살면 된다. 그렇게 사는 사람은 돈을  모으지 않아도 비용이 크게 들어갈 만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그리고 남에게 득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은 남들이 고마워하고  존경하게 되어 아플 수도 없고 어렵게  될 수도 없다. 이렇게 재미있게 일을 하면 돈이  들어올 것이다. 그럼 이 돈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느냐? '맛있는 것도 먹고, 주위 사람과 즐겁게 지내고, 자신을 갖추는 데에 경비로 써라.' 그러면 지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사람이 지적으로 성장하는 것보다  더  큰 재산은 없다. 왜 그러하냐? 지적인 사람이 되면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된다. 그러면 그 값어치는 엄청나다. 다시 말해, 내가 필요한 것을 계속 창출할 수 있어 앞으로의 삶이 보장되는  하나의 보험 회사가 되는 셈이다. 그래서  자신을 지적으로 갖추어 놓은 사람은   결코 어려워질 수가 없다. . . . 인생의 모든 해답을 알려주는 멘토링   -

제사의 숨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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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제사를 천년만년  지내야 하는 줄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도 공부하라고 지금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제사를 모시는 원리와 이유를 알고 그 안의 공부 거리를  찾아내면 제사가 필요 없어지는 것입니다. 제사가 나왔던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조상에게 밥 먹이려고 제삿날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어른이  '내가 죽고 나면 이 아이들이 서로  우애 있게 지내야 할 텐데...'하고 걱정을 하다가 방편으로 생각해 낸  것이 제사입니다. "내가 죽으면 기일을 맞추어서 내 제사 상을 차려라.  이때는 다 와야 한다." 이렇게  유언을 하고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이 어른은  자신이 죽고 나서도 가족들이  한 번씩은 모이게 하려고 제삿날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뿔뿔이 살다 가도 이 날이 되면 다  모여서 우애를 다지고, 맛있는 것도 해 먹고 제사를 지내라고  한 것입니다. 제사상에 무엇, 무엇을 올리라고  하는데 그런 것은 귀한 음식들입니다. 가족들이 모여서 이런 날에  귀한 음식도 한 번씩 먹으라고 제사를  방편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형제, 가족들이 모이고 친지들 중에 장손도 오게 합니다. 그렇게 모이면 의논도 하고 또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기도 하라고  제사를 만들었는데, 이것을 엉뚱하게 끌고 가 버린  것입니다. 제사를 처음 치를 때 그것을 우리가 깨우치지 못하니 제사  속에서 계속 공부하라고 이것을  자손에게 연결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 집안에서  제사의 목적을 알았다면, 이것을 잘  정리하여 소책자라도 만들어 가훈으로  남겨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것을 보고   후손이 따르니 형제 간에 우애도 좋고 제삿날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잘 모이고,  서로 의논하고, 또 조상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아니까 제삿날을 일부러 정해  놓고 제사 상 차릴 필요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법칙을 알았으면  '우리 가족들은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살자' 는 법이 나오면 제사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