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절대 사랑할 수 없다.
"가족이라서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단지 좋은 것에 불과하다.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단지 좋은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우리는 아직도 좋은 것과
사랑의 차이를 모르고 있다.
사랑의 차이를 모르고 있다.
대자연이 우리에게 가족을 왜 주었느냐?
가족이라는 말은 서로가 최고 가까운
사이라는 말로, 가족은 서로 최고의 빚 고리를
가지고 있어야만 될 수 있다.
즉, 부모 자식이 되려면 최고의 업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최고의
빚쟁이 관계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제일
잘 나타내어 보여주는 것이 족보이다.
한마디로 빚쟁이 도표이다.
족보는 서로에게 빚 고리를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 가를 그려 놓은 것으로,
가까울수록 업(業)의 고리가 크고,
그 업(業)의 고리가 클수록 내 옆에 두고
평생 갚아야 하는 것이다.
그 업(業)의 고리가 클수록 내 옆에 두고
평생 갚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는 것도
그 빚을 갚으라는 것이다.
그 빚을 갚으라는 것이다.
즉,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의무를 주고 맺어준 것이 바로 가족으로,
의무를 주고 맺어준 것이 바로 가족으로,
이것이 진짜 대자연의 작품이다.
특히, 부모 자식은 서로에게 빚이 너무
많으니 도중에 내버리지도 못하게
부모의 육신과 피로써 자식을 생산하도록
한 것이다.
한 것이다.
그래서 자식이 분신 같은 생각이 들어,
빚쟁이의 인기(人氣)가 그 육신에 들어가
있는 줄도 모르고 눈에 콩깍지가 씌워져 늘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빚쟁이를 만나게 할 때에는 눈에
콩깍지를 딱 씌운다.
왜냐? 이마에 '빚쟁이'라고 써 붙이고 오면
겁이 나서 쫓아낼 것이기에,
겁이 나서 쫓아낼 것이기에,
네 눈에 아주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여야 네가 데리고 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최고의 원수일수록 콩깍지를 씌워
그렇게 최고의 원수일수록 콩깍지를 씌워
서로 좋아 죽게 만든다.
최고의 빚쟁이는
볼을 비비고 살을 맞대도 좋기만 하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눈으로 본 것이다.
사랑은 최고 가까운 데에서 최고의 행을
했을 때 일어난다.
그래서 그 자를 위해 진정 득 되게
그래서 그 자를 위해 진정 득 되게
행했을 때 우리의 업(業)이 소멸된다.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생산하는 것이지
처음부터 기본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기본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서로에게 행을 하여
즐거움이 오고 기쁨이 오고
행복이 넘칠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음이다.
지금은 '사랑 '이라는 단어는 있어대
사랑은 없다.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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